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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골든 서클>, 보다

너굴아앙 2017. 9. 23. 01:49




※단편적인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직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러닝타임 내내 넋을 놓고 보는 한편 이 미친 영화가 엔딩은 어떻게 장식할 지 기대감과 걱정이 공존하던 중. 



빠바바바 바밤 빠바바바밤- 

펑 펑 펑



모르긴 몰라도 킹스맨을 본 대부분의 사람은 저 두 종류의 효과음을 눈으로만 읽어도 이게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인 지 단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여기에 그 장면의 움짤을 집어넣지 않는 이유도 그 장면을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젠틀하고 섹시하게 약 빤 영화니, 폭력의 댄디즘이니, 타란티노가 만든 뮤지컬이니, 그런 찬사들을 구태여 다시 늘어놓지 않더라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왜 훌륭한 영화인가에 대한 분석과 예찬은 이미 차고 넘쳐 여기서 1편의 얘기를 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킹스맨의 영화적 매력과 완성도는 평론가가 나서서 해설을 해줘야할 만큼의 난해한 예술성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킹스맨은 성공했고 성공한 첩보 액션 영화에 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





그래서 나왔다. <킹스맨: 골든 서클>이. 그 때 그 사람과 함께. 한국에선 9월 27일 개봉을 앞두고 출연진이 내한을 한 것이 제법 큰 이슈가 되었고 영화에 대한 기대도 상당한 것 같다. 미국에서는 9월 21일 개봉을 했는데 나로서는 드물게도 영화 개봉 당일, 그것도 첫 상영 시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킹스맨 특유의 액션 시퀀스로 숨가쁘게 내달린다. 지난 1편에서 킹스맨 자리를 두고 다퉜던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포트)가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에그시(태런 에저튼)와 좁은 택시 속 결투를 벌이는 것. 그리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 새로운 악당 포피(줄리안 무어)는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더니 예고편에서 드러났듯 킹스맨의 기지를 폭파시켜버린다. 양복점과 본거지 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 있던 모든 킹스맨 기지와 요원들이 그야말로 전멸한 것이다. 에그시와 멀린(마크 스트롱)만 남겨두고. 애그시만큼 힘들게 킹스맨이 되었던 록시(소피 쿡슨)도 허무하게 안녕.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으나 빈털털이가 된 애그시와 멀린은 '골든 서클'이라는 의문의 범죄 조직에 대항하기 위해 '최후의 날 규약'에 따라 알 수 없는 단서를 가지고 멀리 미국의 캔터키 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술 장사를 해 킹스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부를 축적한 사촌 뻘 첩보기관 '스테이츠맨'. 카우보이를 눌러쓰고 사냥용 총과 채찍을 휘두르며 싸우는 미국스러운(?) 요원들. 그리고 눈 한 쪽 내주고 살아 돌아온 그 때 그 사람. 에그시와 멀린은 해리를 만나 감격한다. 


물론 누가 봐도 코 앞에서 쏜 총에 맞아 쓰러졌던 해리가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뒷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세 사람의 진정한 재회는 후로 미뤄지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뭉친 세 사람은 스테이츠맨과 협력하여 인류를 인질로 삼고 사업을 벌이는 악당 포피와 그녀의 조직 골든서클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들과 협력하는 스테이츠맨 요원의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나름대로 비중이 큰 조연이기도 하거니와 반가운 얼굴이기 때문이다. 요원 위스키(페드로 파스칼) 말이다. 왕좌의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어, 저 사람이, 할. 바로 도른의 왕자 오베른 마르텔로 분했던 배우이다. 이번 킹스맨에서의 연기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할 수 없지만 왕좌의 게임에서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 지 괜시리 보는 내내 짠한 마음이 들고 또 까불다가 눈이 뽑힐 것 같아 불안하고 그랬더랬다.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개인적인 감상평을 말하자면 여전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보기 전부터 혹시나 가졌던 우려는 역시나였다. 참신하고 파격적이면서도 탄탄한 전개를 자랑하는 영화의 속편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여전한 매력과 장점도 분명 있다. 킹스맨 특유의 경쾌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액션의 향연, 남자들의 로망을 원없이 충족시켜주는 세련되고도 화려한 첩보 기술과 장비의 향연, 소위 '병맛'이라 부르는 선정성과 폭력성을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벼운 터치와 유머로 담아내는 대담성까지.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캐릭터와 혼열일체가 된 주연 배우 태런 에저튼과 콜린 퍼스의 활약도 여전하다. 


다만, 에그시와 해리가 1편만큼이나 매력적이었는 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에그시의 캐릭터가 1편에선 스토리 상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반면 2편에서는 노련한 요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소 평평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해리의 경우는 좀 더 아쉬움이 있었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구구절절 말할 순 없지만, 마치 1편에서 덜컥 죽였다가 팬들의 엄청난 항의에 놀라 해리를 다시 살려낸 것만 같은(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감독의 마지못함이 해리라는 캐릭터에 묻어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싸이코패스 악당 포피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는 다 했다. 할 수 있는 바가 별로 없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확실히 줄리안 무어의 얼굴에도 묘한 섬뜩함과 광기가 있어서 악한을 연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 개인적인 취향을 묻는다면 영화 <스틸 앨리스> 속 줄리안 무어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건 사실이다. 


그 외에 스테이츠맨의 요원으로 새롭게 얼굴을 알린 이들도 미약하나마 매력 발산을 했고, 미국의 첩보기관 스테이츠맨이라는 아이디어도 그 자체는 어느 정도의 신선한 매력 요소가 되었다. 이미 제작이 공언된 3편에서 혹여 킹스맨, 스테이츠맨을 이어 차이나맨이 나오진 않았으면. 





킹스맨 식의 적시 적소(?)에 터지는 노래와 음악들, 그리고 그 중심축이 되는 엘튼 존도 볼거리, 들을거리 면에서 즐거움을 주었다. 놀랍게도 <킹스맨: 골든 서클>의 웃음 포인트 중 꽤 많은 부분이 엘튼 존의 분량에서 나온다는 사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쉽고 엉성하게 엮은 영화의 이야기 얼개 때문이다. 사실상 면면만 달라졌을 뿐, 삐뚤어진 도덕관과 비범한 사업 수완으로 무장한 사업가가 전 세계 인류의 정신을 손아귀에 넣고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는 줄거리는 전편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전편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던 선정성과 폭력성은 수위를 더해 중간의 성적인 묘사나 문자 그대로 사람을 갈아버리는 장면 등 보는 사람에 따라 (전편의 수위를 받아들였던 관객이라도)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그런 점은 이 영화의 골수팬이라면 오히려 환영할 일일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은 악당 포피의 무기력함이다. 위에서도 말했든 줄리안 무어로선 본인의 역할을 했지만, 포피라는 캐릭터는 영화에 긴장감을 주고 주인공들을 위협하기엔 한참 모자라다는 느낌이었다. 악당이 위협적이지 못하니 자연스레 이야기도 느슨해질 수 밖에.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내용과 성격은 물론, 규모와 제작비 면에서도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킹스맨: 골든서클>은 블록버스터가 되어 돌아왔다.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이고도 빚어냈던 세련되고 감각적인 장면과 연출은 전편의 후광으로 얻어낸 막대한 제작비를 등에 업고 더없이 화려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부정적인 요소들, 소재와 배경의 들러리화와 볼거리의 남용, 그것에 압도된 서사, 개연성의 상실 등까지 가져온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맨은 여전히 그 매력이 살아있는 콘텐츠인 것은 분명하다. 조금만 더 그 콘텐츠를 잘 가꿔나간다면 본드 시리즈가 그랬듯 오래도록 장수하는 첩보 액션 시리즈의 대명사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주제 넘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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