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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대상포진 앓다

너굴아앙 2021. 1. 19. 10:52

새해가 밝은지 얼마나 됐다고, 내 유리몸은 또다시 사고를 쳤다. 대상포진에 걸린 것이다.

지난주 화요일에 진단을 받았으니 진단 날짜 기준으로는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뒤늦게 진단을 받은 점과 발진 전 통증 발현 시기를 생각하면 대략 열흘 좀 넘게 앓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좀 살 만한 것 같으니 내가 도움받은 것처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그 경과와 알게 된 정보 등을 공유해보려 한다.

2021년 1월 6일 / 통증 정도: 2-3

뒷목이 뻐근하고 일반적인 느낌의 편두통이 있었다. 이마부터 관자놀이, 뒷머리 등이 아팠는데 모두 왼쪽이었다. 큰 통증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2021년 1월 7-9일 / 통증 정도: 3-5

미간 사이, 왼쪽 눈 바로 옆 안경코가 자리잡는 곳에 작게 피부가 붉어졌는데, 이미 건선을 몇 년째 경험하고 있는 나는 그동안 이마에만 약하게 올라오던 건선이 혹시 번진 건가 싶어 초조해하며 가지고 있는 건선 연고(데소나이드)를 발랐다. 두통이 점점 심해졌고 왼쪽 어깨와 팔이 뻐근하며 저린 느낌이 새롭게 생기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10일 / 통증 정도: 6-8

발진이 점점 붉어지고 커지는 동안, 지금까지 이마 건선에 효과가 좋았던 데소나이드 연고가 듣질 않는 것 같아 이상하게 여겼다. 그 자리에 오돌토돌하게 부풀어오른 알갱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24시간 운영하는 원격 진료 플랫폼 Teladoc에 일반의학과 의사 진료를 예약했다. 의사는 피부를 살펴보더니 다른 건선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두통의 양상이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왼쪽 머리의 정수리부터 왼쪽 뒷목 윗부분까지, 머리의 왼쪽만 따끔거리듯 머리가 아파왔고 목의 뻐근함과 왼쪽 팔의 저림도 계속되었다. 허리 디스크의 전력이 있는 나는 제발이 저려 혹시 허리의 문제인지, 혹은 목디스크는 아닌지 덜컹 겁이 났다. 그리고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니 내 증상이 후두 신경통의 증상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하고 이거다, 혼자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밤이 되자 통증이 몹시 심해졌다. 머리카락만 살짝 건드려도 왼쪽 머리 전체가 찌릿하며 몹시 아팠고 그렇기에 머리 뒷편이 눌릴 수 밖에 없는 눕는 자세가 곤욕이었다. 응급실을 갈까, 참을까 고민을 하며 몇 시간을 뒤척이다 어찌 어찌 잠은 들었다.


2021년 1월 11일 / 통증 정도: 7-9

밤새 시달린 끝에 결국 아침에 ER(응급실)행을 택했다. 간호사와 의사에게 왼쪽 머리, 팔 다리에 온 증상을 설명하며 디스크 병력이 있다고, 혹시 후두 신경통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의사가 미간 사이의 피부 발진은 뭐냐길래, 내가 psoriasis(건선)인 것 같다고 하니, 아 오케이 하고 넘어갔다. 의사는 뇌 CT를 찍자 했고, 당연히 결과는 깨끗했다. 의사의 진단은 migraine, 그러니까 편두통(...). 그 자리에서 마약성 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하이드로코돈을 주사로 맞고 동일한 진통제를 먹는 약으로 처방받은 후 응급실을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대상포진인지 발견하지 못한 게 제일 아쉽...

아무래도 후두 신경통, 목디스크 등이 의심되었던 나는 MRI 오더를 받고자 다른 의사와 원격 진료를 진행했고,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오라는 권고에 따라 엑스레이 촬영까지 바로 근처 병원에서 진행했으나 마찬가지로 목과 허리 모두 멀쩡. 그 사이에 발진이 이마에, 코 중간 즈음에, 그리고 코 끝에 뾰루지처럼 작게 하나씩 올라왔다.

밤이 되고 마약성 진통제의 효과는 사라졌다. 취한 듯한 느낌에 통증이 잠시 가려져 있을 뿐이었지만, 곧 통증이 이를 뚫고 나왔다. 하이드로코돈 알약을 먹어도 효과가 전혀 없었다. 이제 왼쪽 얼굴도 마치 누구에 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감각이 온전치 못한 느낌이 들었고, 누워서 머리가 눌리면 왼쪽 머리와 어깨, 다리까지 통증과 저림이 심했다.

2021년 1월 12일 / 통증 정도: 7-9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 아침에 같은 병원 ER을 재방문했다. 그리고 새로운 의사는 증상을 듣다가 마스크 사이로 빼꼼 보이는 발진과 이미 잔뜩 올라온 수포를 보자마자 shingles, 대상포진 진단을 내렸다. 이토록 오랜 헛발질 끝에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의사는 항바이러스제 벨트락스 7일치와 함께 듣지도 않는 하이드로코돈 진통제를 다시 처방해주었다. 얼굴, 특히 코에 발진이 났지만 다행히 눈에는 번지지 않았다는 소식과 함께 귀가.


집에서 어제 원격 진료를 받았던 의사(엑스레이 오더 준 의사)와 팔로업 진료를 진행했는데,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72시간이 매우 중요한데 너무 늦게 항바이러스제를 받았다, 고로 넌 postherpetic neuralgia(대상포진 후 신경통)에 평생 시달릴 수도 있다, 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며 대상포진 후 신경통 완화에 도움이 되는 항경련제 가바펜틴을 처방해주었다. 병에 무지하니 모르는 만큼 걱정과 두려움의 크기가 컸고 이때부터 대상포진에 대한 공부가 시작됐다.


대상포진보다 걱정병이 더 문제였던 내가 확인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1. '72시간 골든 타임'은 중요하지만, 이 좁은 범위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고 이 기간이 지나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도 무용지물인 것이 전혀 아님.

2.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50세 이상 대상포진 환자 중 10-13%에게 발생하고 60세 이상, 70세 이상 등 고령일수록 확률이 높아지긴 하지만 50세 미만, 특히 2-30대 환자라면 extreamly rare 케이스(1-3% 수준)에 해당함.

3. 심플하지만 위로가 되는 사실. 진통제 먹고 잘 버티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2-3주 지나면 낫는다.

이후 날짜부터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모두를 위해 간략하게 증상 위주로 일지를 이어가려 한다.

2021년 1월 13일 / 통증 정도: 7-9


수포가 검붉은 색이 되가며 굳어감. 발진 부위가 얼얼하고 화끈거리지만 그 통증보다 왼쪽 머리와 얼굴의 신경통이 더 견디기 어려움. 통증의 종류도 다양하여 가만히만 있어도 계속 느껴지는 당기는 듯한 통증과 얼얼함, 스치기만 해도 아픈 통증,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작열통 등이 있음.

가바펜틴은 의사 처방에 따라 자기 전에 한 알(300mg)만 먹었으나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음.

2021년 1월 15일 / 통증 정도: 6-8

저녁에 갑자기 눈이 참기 어렵게 간지럽고 충혈되었고 왼쪽 눈의 아래쪽 눈꺼풀 속에 작은 수포 혹은 뾰루지 같은 알갱이가 보임. 특히 코에 발진이 생기면 눈 전이 위험이 크다 하여 안과 예약.

후두부를 제외한 팔, 목, 어깨 등에 통증이나 저림은 사라짐. 왼쪽 머리 및 얼굴의 통증은 조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눕거나 머리가 흔들기만 해도 얼얼함. 이따금씩 작열통도 이마와 정수리 중심으로 찾아옴.

대상포진 후 신경통에 대한 대부분의 가바펜틴 처방이 '300mg*3/일' 또는 '첫날 300mg, 이튿날 600mg, 이후 900mg/일'인 것 확인하고 오늘 2회 복용 후 내일부터 3회씩 복용하기로 함.

2021년 1월 16일 / 통증 정도: 6-7

안과 방문. 눈에는 전이 없었음.

딱지가 앉은 부위 중 코 중간과 이마에 났던 작은 딱지가 먼저 떨어져 나갔음. 메인 부위인 미간 사이의 딱지도 꽤 굳어진 것으로 보아 머지 않아 떨어질 것으로 기대.

왼쪽 머리 뒷편과 정수리에 집중된 통증은 아무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으면 제법 괜찮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여전히 상당함.

2021년 1월 17일 / 통증 정도: 2-4

새로운 소염진통제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 나프록센 함께 복용. 꽤 효과가 있음. 함께 복용 시 부작용도 없어 당분간 계속 복용 예정.

2021년 1월 18일 / 통증 정도: 2-4

항바이러스제 발트렉스 7일치 모두 복용. 메인 발진 부위의 딱지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상태. 머리를 건드려도 통증이 거의 없음. 아주 가끔 편두통처럼 왼쪽 머리 일부가 욱씬거리거나 정수리에 작열통을 느낄 때가 있음.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이후 며칠은 가끔 신경통이 왔다. 그것도 며칠 후엔 사라짐.


*면역력에 도움이 되면서 함께 복용 시 문제 없는 것 확인 후 복용 중인 영양제
1. 비타민 B 컴플렉스
2. 라이신(아르기닌과 동시 섭취 지양)
3. 커큐민
4. 종합 면역력 증강 영양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