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하는 말을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말 사이에는 입이라는 허술하기 짝없는 문지기 하나만 존재하여 그 문만 넘으면 주워담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은 생각을 함부로 할 때가 있으므로, 말이 함부로 나오는 건 그만큼 쉽다. 글은 그렇지 않다. 내 생각과 내 글 사이에는 글자수만큼의 문지기가 존재한다. 그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말하듯이 함부로 쓰인 글을 보면 그래서 괴롭다. 비문 투성이에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으로 가득한 글을 보고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다. 맞춤법을 지키고 고상한 표현을 들먹이며 함부로 쓴 글을 보면 몇 배는 더 서러워진다. 하물며 그 글에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걸 보면, 글을 다루는 일이 업인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생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말은 함부로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글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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