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시작은 이랬다.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애인의 집으로 떠나 두어달 머물렀다. 그리고 그 이웃집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당시 나이 일곱 살, 사람으로 치자면 중년을 넘은 아주머니지만 늠름하게도 이름은 어흥이인. 이 아주머니가 내 인생에, 우리 인생에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줄이야. 그 친구가 집을 비우며 어흥이를 우리가 며칠간 돌봐주게 되었는데, 그 며칠은 우리가 이 영롱한 눈빛의 생명체에 완전히 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흔히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사람을 고양이 형이나 개 형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우리는 그 며칠 만에 우리의 (집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 것이다. 속된 말로 입덕. 그리고 어흥이는 집으로 돌아갔..